‘악인전’은 2019년에 개봉한 액션 느와르 영화로,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손을 잡은 경찰과 조폭의 이례적인 공조를 다룬 작품입니다. 실제 대구에서 벌어졌던 연쇄 흉악범 사건을 바탕으로 하며, 강력한 서사와 마동석의 묵직한 존재감, 장르적 긴장감이 조화를 이룹니다. ‘악인전’은 단순한 범죄 추격극이 아니라,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영화 속 주요 갈등 구조, 인물들의 연기, 그리고 장르적 특징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범죄와 복수, 공존할 수 없는 정의
‘악인전’은 범죄조직의 보스 장동수(마동석 분)가 의문의 연쇄살인범에게 습격당하면서 시작됩니다. 자신이 죽을 뻔한 경험을 한 장동수는 경찰보다 먼저 범인을 잡고 복수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반면, 이 살인범을 쫓고 있던 강력반 형사 정태석(김무열 분)은 장동수를 수사 대상이 아닌 ‘공조 파트너’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수사에 진전이 없던 상황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조직폭력배의 정보력과 행동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전’은 선과 악의 구도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살인범을 잡기 위해 경찰이 조폭과 손을 잡는다는 설정은, 일반적인 도덕적 관념을 거스르는 이야기 구조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전제를 납득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매우 현실적인 묘사와 강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특히 장동수가 피해자라는 점은 그가 ‘악당이지만 피해자’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며, 관객의 시선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 영화에서 ‘정의’란 순수하지 않습니다. 경찰도, 조폭도, 심지어 피해자의 가족조차도 자신의 감정과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 혼란 속에서 진짜 악인인 연쇄살인범은 인간의 취약함을 교묘히 이용합니다. 결국 영화는 선과 악, 법과 범죄, 공권력과 사적 복수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그 속에서 관객은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게 됩니다. 이는 ‘악인전’이 단순한 액션영화를 넘어선 하나의 사회적 텍스트로 읽힐 수 있게 하는 지점입니다.
캐릭터의 힘, 마동석의 압도적 존재감
‘악인전’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바로 캐릭터 간의 팽팽한 긴장과 강렬한 존재감에서 나옵니다. 그 중심에는 단연 마동석이 있습니다. 그는 장동수라는 인물을 통해 단순한 조폭 보스를 넘어서, 복수심과 생존 본능, 그리고 미묘한 정의감을 동시에 표현해냅니다. 장동수는 극 중 가장 많은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지만, 관객은 그에게서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마동석 특유의 '강한데 따뜻한' 이미지가 완벽하게 부합된 결과입니다. 마동석은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분노와 두려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때론 침묵 속에서 불안감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특히 살인범에게 습격당한 이후 병원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은, 그가 단순한 폭력배가 아닌 인간 장동수로서 느끼는 충격과 분노를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마동석의 연기는 육체적 파괴력뿐만 아니라 감정적 내공을 지닌 인물로서 장동수를 완성시킵니다. 반면 김무열이 연기한 정태석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경찰이지만, 점차 감정에 휘둘리며 장동수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 두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협업이 아니라 갈등과 불신, 때로는 일종의 브로맨스처럼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마동석과 김무열의 케미스트리로 인해 설득력을 얻게 되며, 영화는 캐릭터 드라마로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악인전’은 인물이 살아야 영화가 산다는 진리를 증명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르의 공식, 그 안에서의 변주
‘악인전’은 액션 느와르 장르의 공식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독창적인 변주를 시도합니다. 전형적인 복수극의 구조인피해, 추적, 복수를 유지하면서도, 조폭과 경찰의 이례적인 공조라는 틀을 통해 신선함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변주는 단순히 이야기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장치에 그치지 않고, 장르적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연출 역시 장르의 공식을 활용하면서도 감정의 리듬을 조절하는 데 집중합니다. 전투 장면은 과감하게 편집되고, 카메라는 가까이 붙어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놓치지 않습니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살인범과의 마지막 대치는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감정의 폭발로 연출되며, 관객에게 피로감이 아닌 카타르시스를 안겨줍니다. 이처럼 ‘악인전’은 폭력의 미학보다 감정의 격돌에 초점을 둔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또한 배경음악과 조명, 색감 등 시각적 요소도 장르적 감성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어둡고 차가운 도시 배경, 금속성의 조명, 무채색 의상 등은 전체적으로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게 하며, 이는 범죄 느와르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독립적인 개성을 더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악인전’이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는 2019년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었으며, 이후 할리우드 리메이크가 결정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악인전’이 단순히 국내에서만 통하는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글로벌하게 통용될 수 있는 장르적 보편성과 스타일을 갖췄다는 반증입니다. 결국 ‘악인전’은 장르의 틀 안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성공적으로 끌어낸 사례로, 향후 한국형 액션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