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는 새로운 여성 액션 캐릭터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평범한 시골 소녀로 살아가던 자윤이 자신도 몰랐던 과거의 비밀과 정체성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스릴러, 액션, 미스터리가 어우러진 복합 장르의 영화입니다.
특히 배우 김다미는 주인공 ‘자윤’ 역을 맡아 섬세한 감정 연기부터 폭발적인 액션까지 완벽히 소화하며 단숨에 충무로 기대주로 떠올랐습니다. ‘마녀’는 단순한 초능력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윤리, 기억, 폭력에 대한 철학적 질문까지 던지는 문제작으로, 리뷰를 통해 작품의 구조와 의미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도입부의 위장된 일상
‘마녀’는 처음부터 액션이나 긴장감 넘치는 장면으로 관객을 압박하기보다는, 오히려 잔잔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관객을 유도합니다. 시골에서 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자윤과 그녀를 키운 양부모, 그리고 친구들과의 학창생활이 주된 흐름으로 그려지며, 관객은 이 영화가 다소 감성적인 드라마가 아닐까 착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장르적 외피를 은폐한 첫 30분은 이후 펼쳐질 충격적인 반전을 위한 장치이자,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는 섬세한 구조적 장치입니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캐릭터 중심의 서사 구조를 통해 ‘자윤’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와 감정 이입을 돕습니다. 그녀는 유쾌하고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유 없는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이며 미묘한 불안감을 암시합니다. 관객은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지만, 영화는 이를 서서히 풀어나가며 이야기의 긴장을 점차 높입니다. 이러한 전개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품게 만들며, 이야기의 중심 축을 단단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감독은 이러한 평범한 삶과 초현실적 진실 사이의 간극을 교묘하게 연출하면서, 관객을 철저히 ‘낚는’ 방식의 서사를 전개합니다.
‘마녀’는 단순한 초능력물도, 복수극도 아닌, 인간의 본성과 기억, 그리고 폭력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독특한 시선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서론은 평범함 속에 감춰진 불안과 폭력의 기운을 예고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향한 준비를 마칩니다.
자윤의 정체성과 폭력성의 분출
중반 이후 ‘마녀’는 완전히 다른 톤의 영화로 돌변합니다. 자윤이 점점 정체불명의 인물들과 맞닥뜨리고, 그들의 행동이 점차 위협적으로 변해가면서 관객은 이전과는 다른 텐션을 느끼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본격적인 미스터리와 액션 장르로 전환하며, 전반부의 일상적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자윤은 점차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며, 그 능력의 출처와 함께 과거의 실험실, 연구소, 그리고 자신을 키워낸 기관에 대한 단서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특히 최우식이 연기한 ‘귀공자’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폭력적이고 광기 어린 감정선으로 빠르게 이동하게 됩니다. 자윤과 귀공자의 대립은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동일한 뿌리를 지닌 두 존재의 충돌로서, 폭력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영화의 액션은 단순히 시각적 볼거리를 넘어,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작용합니다. 자윤의 분노와 혼란, 상실감은 폭력으로 분출되며, 이는 곧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해석됩니다.
CG와 와이어 액션, 슬로우 모션을 절묘하게 섞은 연출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자윤이 기억을 완전히 되찾고 나서 벌어지는 후반부의 대반전은 관객에게 충격을 안기며, 기존에 알고 있던 캐릭터의 이미지를 완전히 전복시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제목인 ‘마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그녀는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무언가를 의도하고 준비해온 존재였으며, 이는 기존의 약한 여성 캐릭터를 탈피한 새로운 서사의 탄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녀’는 이러한 전환을 통해 장르 영화의 전형을 뒤틀며, 여성 서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후속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
‘마녀’는 단순히 한 여성 초능력자의 성장이나 복수극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기억의 왜곡,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폭력성의 기원을 둘러싼 심리적 긴장감을 다층적으로 구성한 복합적 서사 구조를 통해 장르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관객은 자윤이라는 인물을 따라가면서 인간의 본성, 환경의 영향, 그리고 선택의 결과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김다미는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폭넓은 감정선을 자유자재로 표현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단지 신인급의 연기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된 듯한 몰입감으로 극을 압도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마녀’는 배우 김다미의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박훈정 감독의 연출력은 단순히 장면을 멋있게 찍는 데 그치지 않고, 장면과 장면 사이의 연결, 서사의 흐름, 인물 간의 갈등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SF나 초능력 장르와는 다르게, 심리적 깊이와 감정적 무게를 더해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무엇보다 ‘마녀’는 ‘Part 1’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는 점에서 후속편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으며, 이야기는 명확한 결말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둔 채 마무리됩니다.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윤의 미래와 그녀가 속한 세계에 대해 지속적인 상상과 해석을 이어가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마녀’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탄생, 장르 해체적 서사, 뛰어난 연출과 연기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수작입니다. 단순한 오락 영화가 아닌, 질문을 남기는 영화로서의 가치를 지닌 ‘마녀’는 이후 한국형 장르 영화의 흐름에 중요한 이정표로 남을 것입니다.